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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신화와 인생 | 조지프 캠벨 | 갈라파고스

by 지식편집자 2023. 9. 6.

 

 세계적인 신화학자이자 비교종교학자인 조지프 캠벨의 책입니다. 캠벨은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둔 시점에 학교를 떠나 1929년 숲에 들어갑니다. 1929년은 미국 대공황이 시작된 해입니다. 1929년부터 1934년까지 5년간 숲에서 살며 마음껏 책을 읽고 사색합니다. 박사 학위 대신 유기적인 삶의 흐름에 자신을 내던집니다. 숲에서 5년간 사색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그는 자신만의 희열을 쫓아 살았고 세계적인 신화학자로 명성을 얻게됩니다. 조지프 캠벨은 각자의 희열을 따르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방종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 넘치는 것이며, 자신만의 희열을 쫓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구본형 선생님과 레이 달리오의 글을 읽다보면 조지프 캠벨의 영향을 받은 것이 엿보입니다. 특히 다음의 레이 달리오 영상은 조지프 캠벨의 진수를 요약한 듯 합니다.

 

https://youtu.be/NHxx_F56b0Y?si=CyXBlkhsDAHfDA5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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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강요할 갖가지 계획을 갖고 있다. 여러분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길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나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5년 동안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완벽한 삶을 산 것 같다. 내가 필요한 것들은 내가 필요로 하는 그 순간에 맞춰 나타나 주었다. 내가 그 당시에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5년 동안 직업도 없이 지낼 수 있는 삶이었다. 그게 가장 절실 했다.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여러분이 지금까지 지내 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그 삶 자체가 어떤 일괄적인 줄거리를 이룬 듯 여겨질지 몰라도, 실제로 여러분이 그 과정을 겪어 온 과정은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뜻밖의 일 뒤에 또 뜻밖의 일이 뒤를 따르는 식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돌아보면, 여러분은 비로소 그것이야말로 완벽했음을 깨달을 것이다. 따라서 내 지론은,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면 만사가 여러분에게 자연스레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길이고,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앞서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

2. "지금도 각자를 위한 길이 저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일단 그 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이전까지는 열리지 않았던, 그리고 다른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열리지 않은 문들이 열리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며, 심지어 어머니 대자연 역시 그여정을 도울 것이다.

나는 우리가 신들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신들은 우리를 향해 열 걸음을 다가서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한 걸음, 여정의 그 영웅적인 첫 걸음은 여러분의 울타리 바깥으로 또는 그 가장자리 너머로 나아가는 것이며, 우리는 가끔 심지어 도움을 받고 있음을 깨닫기도 전에 발걸음을 먼저 내딛어야만 한다. 영웅의 여정은 탄생에 비유되어 왔다. 처음에는 안전한 장소에서 따듯하고 아늑한 상태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신호가 오고, 그것이 점점 강렬해지면,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다 지나도록 거기 머물러만 있으면 썩어 버리게 된다. 피와 찢어짐과 고통이 없다면 새로운 생명도 있을 수 없다."

3. 만약 지금 여러분이 따르는 모험이 본인의 진정한 모험이라면, 또한 그것이 여러분의 깊은 영적 필요 또는 준비에 적합한 것이라면, 여러분을 돕기 위해 마법의 인도자가 나타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올해는 모두들 이 여행을 나설 예정이라고 하니, 나도 그냥 따라가야지"하고 말한다면, 인도자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거이다. 여러분의 모험은 여러분 자신의 내부에서 곧바로 솟아나야만 한다. 여러분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전까지는 문이라곤 없었던 곳에서, 그리고 다른 누구도 겪어 보지 못했던 곳에서 여러분을 위한 문이 열릴 것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모험을 향한 부름이며, 다시 말해서 이제부터는 아무런 안전도, 아무런 규칙도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중심을 향해 나가아가는 동안, 여러분은 더 많은 도움은 물론이고 점점 더 어려운 시험과 마주칠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이 계속해서 매달려 왔던 것들을 점점 더 많이 포기해야만 한다. 그 마지막은 완전한 포기, 전적인 양보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삶에서 경험한 것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도 정반대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무의식 속으로의 이행이다. 달리 말하지만, 이것은 여러분이 전혀 모르는 행동의 장 속으로의 이동이다. 무슨 일이건 일어날 수 있으며, 그 일은 여러분에게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

여러분이 더 깊이 들어갈수록, 여러분은 궁극적인 깨달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저항 역시 더 강력해진다. 여러분은 억압된 것들로 이루어진 영역까지 내려가게 되는데, 여러분은 그 억압 체계를 반드시 지나가야만 한다. 물론 그 무엇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마법의 도움이다. 영웅은 이곳에 이르러서 자신의 초인적인 여정 내내 자신을 도와준 자비로운 힘이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4. 카를 융은 인생의 곡선이 딱 반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그 중 절반은 관계의 시간이며, 나머지 후반은 자기 안의 삶을 감각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여러분 자신의 내부를 향한 삶으로 가는 시기이다. 그러고 나서 완전한 해방이 찾아온다. 분노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인생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노래하면 자신의 죽음으로 가는 것이다.

"의사로서 나는 사람들이 죽음에서 어떤 추구할 만한 목적을 발견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고 확신한다. 죽음을 외면하는 것은 인생의 후반기에서 그 목적을 빼앗는 불건전과 비정상의 징후라고 생각한다. -카를 융

5."꼭 해야 할 일이라면

마치 놀이를 하듯 하라.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이든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진정한 의미란 살아 있음 바로 그것이다.

전사의 방식이란

삶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라.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

만약 우리가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우리는 단단히 잘못 짚은 셈이다.

이 세계는 완벽하다. 그것은 혼란의 도가니이다.

이 세계는 항상 그렇게 혼란의 도가니였다.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임무는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계획해 두었던 삶을

기꺼이 내팽개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니까.

낡은 허물을 벗어던져야만

새로운 껍질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전 것에 집착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떤 형상에 매달리게 되면

우리는 썩을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지옥이란 말라붙은 삶이다.

욕심꾸러기,

뭔가를 고수하려 하고 붙들어 놓으려고만 하는 우리 안의

그 욕심꾸러기를 반드시 없애 버려야만 한다.

현재의 형상에만 매달리면,

우리는 다음의 형상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서

오믈랫을 만들 수 있겠는가.

파괴가 있은 다음에 창조가 있다.

완벽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모르는 과정은 우선 뭔가를

깨뜨리는 것과 연관된다.

생명이 움트기 위해서는

반드시 흙이 부서져야만 한다.

씨앗이 죽지 않는다면

식물이 생길 수 없다.

빵이란 결국

밀의 죽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생명이란 다른 생명들을 희생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근거한 것이다.

자신이 살 만한 가치를 지녔다면

그 가치를 기꺼이 취하라.

우리가 삶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삶을 경험하는 것,

고통과 기쁨 모두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짝이며,

우리 역시 이 세상의 짝이다.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삶의 고통과 잔인함에 대한

부정은

결국 삶에 대한 부정이다.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예"라고

말할 수 있게 된 후에

우리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어떤 것에 대해 [의례적으로] 공정한 태도를 지니는 것은

곧 그것을 모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경외심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여러분 자신의 길을 따라

삶을 계속해 나아가는 동안에는

혹시 새똥이 떨어진다 해도

그걸 닦느라 신경 쓰진 마라.

여러분이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여러분은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

결국 유머 감각이 여러분을 구원하리라.

영원은

여기와 지금으로

이루어진 차원이다.

신은 여러분 안에 살고 있다.

여러분 자신의 중심에서 살아가라.

여러분의 진정한 의무는

공동체로부터 멀리 떠나

여러분만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사회가 그 체제를

개인에게 강요할 때

사회는 곧 적이

그 용에게는 수많은 비늘이 있으니,

그 각각에는 "너는 할지니"라고 적혀 있다.

"너는 할지니"라고 하는 용을 죽여라.

그 용을 죽인 사자는

비로소 아이가 된다.

깨뜨리고 나옴은

[남이 보여 준] 희열의 모범을 따르고,

옛 장소에서 떠나고,

여러분의 영웅 여정을 시작하여,

여러분만의 희열을 따르는 것이다..

뱀에 그 허물을 벗어 버리듯,

여러분은 지난 날을 내팽겨쳐라.

여러분만의 희열을 따르라.

영웅적인 삶은 "각자만의" 모험을 실행하는 것이다.

모험으로부터의 부름을 따르는 것에는

아무런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미리 안다면

그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런 부름을 거부하는 것은

부패를 의미한다.

여러분이 긍정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것은

결국 부정적으로 경험될 것이다.

여러분은 숲으로 들어간다.

그것도 가장 어두운 곳을 골라서

그곳에는 아무런 길도 없다.

만약 그곳에 어떤 길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길이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길이 아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의 길을 따라간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보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영웅의 여정에 담긴 목표는

영혼에서 여러 층위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파헤쳐

마침내 여러분 자신이

붓다의 의식이며

그리스도라는

신비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 여정이다.

그것은 바로

몰입이 물방울처럼 떨어져 내리는

여러분의 마음 속 정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심연 속으로 내려감으로써

우리는 삶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분이 비틀거리며 넘어지려는 곳,

거기에 여러분의 보물이 묻혀 있다.

여러분이 차마 들어가기 겁내던

바로 그 동굴이, 여러분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의 원천임이 밝혀진다.

동굴 속에 숨어 있던, 그 무시무시하던

저주받은 것이

바로 그 중심이 된다.

여러분은 보석을 발견하고,

보석은 여러분을 끌어당긴다.

영적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여러분은 세속적인 것도 얕보지 않을 것이다.

여정의 목적은

공감이다.

여러분이 여러 대립자들을

지나쳐 왔을 대,

여러분은 이미 공감에 도달했던 것이다.

목표는 보석을 다시 이 세계로

가져오는 것이고,

그 두 가지를 서로 합치는 것이다.

겉으로는 따로따로인 듯

보이는 사물들도

근본적으로는 하나에 불과하다.

대립자의 세계 너머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경험되는

통일성과 동질성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오늘날 지구는

유일하게 적절한 '내집단'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희열을 느끼고 돌아와

그것을 통합시켜[서 완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귀환은

어디에서나

광휘를 목격하는 것이다.

스리 라마크리슈나는 말했다.

"깨달음을 찾으려는 자라면

마치 머리에 불붙은 사람이

연못을 찾는 것과 같은 간절함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원한다면,

신들은 그것을 주리라.

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거대한 풍파 속에서도

신과 같은 침착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마치 디오니소스가 표범에 올라타고도

갈가리 찢기지 않은 것처럼.

어느 아메라카 인디언 소년이

입문 제의를 행할 대

이런 조언을 얻었다.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구렁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넓지 않으리라."

6. 여러분은 마치 어마어마한 실패인 양 보였던 파멸 직후의 순간들이 사실은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을 만들어 준 사건들이었음을, 그것이 명백한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에게 벌어지는 일 가운데 긍정적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비록 그 순간에는 부정적인 재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재난은 여러분을 뒤로 물러서게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자면] 여러분이 힘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재난이 생기는 것이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 지나야

곧이어 계시가 나타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온통 어둠인 것처럼 보일 때,

새로운 삶이, 하나같이 내가

필요로 하던 것들이 나타난다.'

7. 결국 모든 삶은 전체의 실현, 즉 자아의 실현이다. 때문에 그 현실을 '개성화'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삶은 그것을 실현하는 각각의 운반자에 매여 있으며, 운반자 없는 삶은 상상조자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운반자는 개별적인 운명과 목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것을 실현했을 때에야 비로소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카를 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