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색깔이 물씬 나는 책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적 관심이 아닌 블록체인을 공부하다 읽게 된 책입니다. 초자연적 설명이 아닌 사회과학 분석 모델을 기초로 초기 교회 확산의 원인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저자는 2천년 전에 시작된 미약했던 예수 운동이 어떻게 당시 거대했던 로마제국을 3백년 만에 복음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사회과학적 방식으로 서술합니다. 종교 사회적 현상을 계량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신선합니다. 너무나도 탁월한 책입니다.
기독교 전파 과정을 읽으면서 이 세상은 "복잡계 네트워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애착관계로 이어진 사회적 네트워크가 종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설명에 상당한 통찰을 발견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와 지수함수적 성장은 오늘날 복잡계 물리학과 플랫폼 기업들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개념들인데 기독교 부흥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통찰력을 발견했습니다.
<선교사들이 낯선 집에 불시에 방문하여 문을 두드릴 경우 개종으로 귀결될 확률은 1천분의 1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몰몬교 친구나 친척의 자택에서 몰몬교 선교사와 첫 접촉을 하는 경우, 개종으로 이어질 확률은 50퍼센트였다..
누군가를 개종시키려는 운동이 성공하기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한 성장, 그리고 '직접적이고도 친밀한 대인 애착관계라는 구조'를 통한 성장이다. 대부분의 신흥 종교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는 재빨리 폐쇄적이거나 반폐쇄적인 네트워크로 변하기 때문이다. 즉, 외부인과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실패하면서 성장 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성공적인 운동은 개방적인 네트워크로 남아 있는 기법을 발견함으로써 바깥으로, 주변의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 속으로 뻗어 나간다. 바로 여기에 운동이 장기간에 걸쳐 폭발적인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역량이 존재한다...
'개종 프로세스의 역학'은 지수 곡선을 따라 절대치가 고속성장 단계에 도달했을 때에도 변함이 없다. 폭발적인 성장의 이유는 운동이 성장함에 따라 비례적으로 그 운동의 사회적 표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즉, 각각의 새로운 신자가 해당 종교 집단과 잠재적 개종자 사이에 형성하는 애착관계 네트워크의 규모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개방형 네트워크를 유지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발흥을 더 잘 이해하고 설명하려면 어떻게 초기 기독교인이 개방형 네트워크를 유지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기독교 신약성서가 기존의 기성 종교인 유대교의 구약성서와 지닌 "문화적 연속성"이 새로운 종교 수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당시 로마 제국을 강타하며 수 많은 사람을 죽인 역병이 기독교의 발흥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는 그의 통찰력은 정말로 탁월합니다. 역병 가운데 "종교 사회적 애착관계와 생존 확률과의 상관 관계"를 살피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간호"가 매개 역할을 했다는 대목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여성의 위상과 비율이 높았습니다. 여성의 위상과 역할이 종교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레코-로만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1.4: 1 수준이었으며 여아와 기형 남아를 유기하는 것이 용인되던 사회였습니다. 반면에 기독교 교리는 영아 살해 및 낙태 금지하여 여성의 성비가 높아지며 출생이 높아졌습니다. 기독교인 여성과 이교도 남성의 통혼과 기독교 부흥과 상관성 분석도 흥미롭습니다. 기독교 교리가 확산됨에 따라 도시의 성비 비율이 균형을 찾아갔고 종교적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기존의 유대교와 달리 기독교는 여성 인권을 높여 여성 친화적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여성들 사이에서 성공적이었습니다.
기독교는 "도시 운동" 이었고 신약성서의 기록자들은 도시인들이라는 관점도 흥미롭습니다. 웨인 믹스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 후 10년이 안 되어 팔레스타인의 마을 문화는 무대 뒤로 사라지고 크레코-로만 도시가 기독교 운동의 주요 배경으로 전면에 등장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자는 계량적 분석을 통해 도시의 인구 수가 많을수록 기독교인 비중이 높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지역의 도시화 정도가 높을수록 비정형성 정도가 더 높기 때문에 인구가 많을수록 일탈적 종교 문화 형성에 필요한 임계치를 모집하기가 더 쉽다고 설명합니다. 도시가 클수록 기독교인이 더 빨리 교회 구성에 필요한 임계치를 모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도시의 복잡계 네트워크가 종교 확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흥미로운 분석입니다. 로마와의 도시 연결성이 낮을수록 그리고 동방(헬라와 유대) 문화와의 도시 연결성이 높을수록 교회 설립 빈도가 높다는 것을 회귀 분석으로 도출한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혼잡한 고밀도의 도시 "안디옥"이 상당히 높은 기독교 수용성을 보였는데 이를 도시민들의 일상 생활의 물리적 환경과의 상관성으로 해석합니다. 기독교는 역병, 화재, 지진, 혼잡, 범죄 등에 대안이 되어 사회 응집의 새로운 토대로 작동하였습니다. 역병이 돌던 시기의 환자 간호, 낙태와 영아 살해 거부, 출산율 제고, 열정적인 조직문화 형성에 기독교 교리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기독교의 중심 교리는 매력적이고 해방적이며 사회관계와 조직을 촉발하고 지탱했습니다.
합리적 선택 이론을 통해 "순교"를 바라보며 순교와 같은 희생과 낙인이 기독교 발흥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하는 대목도 신선합니다. 희생과 낙인 덕분에 교회는 어떤 일도 불사하려는 지극히 헌신적인 구성원이 대거 포진한 강고한 조직이 될 수 있었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기독교가 최고의 종교적 거래(bargain)이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종교는 희소하거나 구할 수 없는 보상에 대한 보상 장치를 제공한다>라는 저자의 설명은 최근 관심 갖고 보고 있는 토큰 이코노미의 '인센티브 공학'과 연계되기도 합니다. 인간은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념이 아닌 이익이라는 것을 종교에서도 깨닫습니다. <보상의 공급이 제한되어 있어 모든 사람이 원하는 만큼 다 가질 수 없을 때 그 보상은 희소한 것이다. 모든 보상 가운데 가장 희소성이 큰 보상은 지금 여기에서는 아예 획득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가장 희소한 보상에 가장 큰 가치를 둔다. 종교는 그 보상을 획득할 대안적 수단을 제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종교적 보상장치다. 종교적 보상장치는 갈망의 대상인 보상에 대한 일종의 대체재다.... 인간은 보상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합리적 선택'이란 행동의 예상 비용과 수익을 저울질하고 순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순교는 합리적 선택이었고 이들의 합리적 선택은 기독교 발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종교적 자유도는 굉장히 높았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신흥 종교인 기독교가 기존의 니체(niche) 시장을 들어갈 수 있었다는 대목에서 최근 IT 비즈니스의 등장과 정부의 규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기독교가 비밀 종파가 아니었음은 그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한 집단이 외부인에게 매력 있게 다가가려면 잠재적인 개종자가 최소한 그 집단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기독교처럼 고속 성장을 하려면 비구성원과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즉, "개방된 네트워크"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로마의 탄압이 너무도 일관되고 혹독해서 기독교가 비밀 지하운동이 되었다면 이 책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가 진짜 지하운동이었다면 그 존재감은 무의미한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 동안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많은 밑줄을 그은 책입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 관한 사회과학 책이지만 오늘날 우리 현실을 다시 보게 하는 통찰로 가득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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